이양덕의 詩 文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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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을에 서다 /이만섭
지나고 보면 헛되지 않은 것이 어딨으랴
그것을 영화롭게 누리고 간 이조차
칠성판처럼 침묵으로 닫혀 영원을 견디고 있는데
내 그런 주인공의 후예인 양
뚜껑을 열고 다시 이승의 몸으로 현신했으니
꽃도 한때요 열매도 한때이건만
유독 열매가 익어가는 계절 앞에
바람도 내 것인 양 햇빛도 내 것인 양
여여로운 행보를 짓고 있으니
세월이 비킨 듯해도 곤궁치만은 않구나
그래 그때도 내 마음은 만경평야였지
훤훤 바람에 낭창낭창 파도 타는 황금 물결
무성하기로서야 광릉내의 푸른 숲을 지날 때처럼
저만 했으면 좋겠다는 생각은
이제 허물어진 빈집 모퉁이에 서 있는
고욤나무 한 그루인들 담아내지 못할까
비록 지나고 보면 헛될지라도
어둠을 걷어내고 이마를 비추는 달빛 자락에서
저녁 바람에 실어온 마른 잎의 향기라도 담는다면
생의 한가운데란 다른 것이 아니리
* Albinoni / Adagio
For Strings And Organ in G Mino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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