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료영리화 논란이 일고 있는 정책에 대해 정부는 "의료 공공성이 훼손되지 않는다"(이영찬 보건복지부 차관)고 말하고 있다. 그러나 정부가 내세우는 논리의 '허점'을 지적하는 목소리도 커지고 있다. 복지부가 유리한 얘기만 '짜깁기'하고, 투자활성화 정책을 설명하면서 '빼놓은' 사실이 있다는 것이다.
(1) 이미 설립된 병원 자회사의 불공정 거래의료법인이 '영리자법인'을 둘 수 있도록 허용할 경우 병·의원의 영리성이 강화돼 환자들이 피해를 볼 것이란 지적에 복지부는 '이미 설립돼 있는 병원 자회사들을 보라'고 맞선다. 이런 자회사들 때문에 의료비가 치솟는 부작용이 있었느냐는 것이다.
서울대병원법인은 '(주)헬스커넥트'라는 자회사(자법인)가 있고
세브란스병원을 둔 연세학교법인은 의약품·의료용품을 파는 '(주)안연케어'를 가지고 있다. 반면 학교법인이 아닌 의료법인으로 분류되는 일반 병원들은 자법인을 둘 수 없으니 그 규제를 풀어줘야 한다는 게 정부 주장이다.
하지만 정부는 예로 든 '안연케어'가 감사원에서 불공정 거래로 적발당했다는 사실은 애써 숨기고 있다. 2008년 감사원은 안연케어 측이 비싼 가격으로 세브란스병원에 의약품을 판 사실을 적발하고 "의료기관 개설자가 의약품 도매상을 동시에 영위할 경우 그 관계를 이용해 의약품의 실거래가를 부풀리고 불공정 거래를 할 우려가 있기 때문에 의료기관 개설자는 의약품 도매상을 할 수 없도록 법으로 규정돼 있다"면서 "복지부는 의료기관 개설자 본인이나 특수관계인이 의약품 도매상을 사실상 지배·운영하는 것을 방지해야 한다"고 권고했다. 당시 복지부는 안연케어에 대해 불법 리베이트 혐의로 수사를 의뢰하기까지 했다. 그러다 이제는 안연케어와 같은 자회사를 전면 허용해야 한다고 나선 셈이다. 당시 감사결과를 보면 안연케어는 2005년 59억원, 2006년 95억원 등 막대한 기부금을 연세대에 냈다. 우석균
보건의료단체연합 정책실장은 "안연케어가 냈다는 막대한 기부금은 결국 환자들의 주머니 속에서 나온 것"이라고 말했다.
(2) "정부도 반대"하는 의료 민영화는 가장 극단적 형태"의료 민영화, 정부도 반대합니다." 의료기관의 영리자법인 허용 등의 정책이 의료 민영화 논란을 일으키자 복지부가 내건 슬로건이다. 복지부는 "의료 민영화는 (지금처럼 건강보험에 모두 가입해 보험적용을 받는 것이 아니라) 건강보험 환자를 받을지 말지를 의료기관 스스로 선택하도록 맡기는 것"이라면서 "이 같은 의료 민영화는 정부도 절대 반대한다"(권덕철 보건의료정책관)고 밝혔다. 문형표 장관은 의료 민영화에 대해 "주식회사처럼 외부에서 자금이 들어오고 비영리법인의 축을 깨는 것"이라고 덧붙였다.
그러나 이상이 제주대 의대 교수는 정부가 설정한 두 종류의 '의료 민영화' 개념은 "가장 극단적 사례"라고 지적했다. 이 교수는 "국가는 헌법에 보장된 국민의 건강권 즉 '의료의 공공성'을 지켜야 하는 책임을 지고 있는데 그 공공적 책임의 영역을 축소하는 것 자체를 '의료 민영화'라고 하며, 이것은 학술적으로도 이미 정립된 것"이라고 말했다.
'내가 만드는 복지국가'의 김종명 의료팀장(의사)은 "정부가 규정한 의료 민영화는 궁극적인 지점과도 같은 것, 즉 '만점' 수준에 해당한다"면서 "만약 100점을 목표로 공부해 70, 80점에 머물렀다고 해서 민영화를 향해 가고 있지 않음을 의미하는 것은 아니다"라고 말했다.
투자활성화 대책에 담긴 '의료기관의 인수·합병 허용' 중에서도 정부가 침묵하고 있는 대목이 있다. 우석균 실장은 "의료법인은 도산할 경우 국고로 귀속된다"면서 "인수·합병 허용은 의료라는 공공재의 특성을 무시하고 의료기관을 일반 상품을 파는 기업처럼 다뤄도 된다고 길을 터준 것"이라고 말했다.
(3) 도서벽지 주민을 위한 원격의료는 지금도 가능"원격의료는 도서벽지나 거동이 불편한 노인·장애인 등 의료취약 지역 및 계층에 대해 의료의 접근성을 높여 국민 누구나 양질의 의료서비스를 받게 하자는 취지로 도입한 것이다."
최원영 청와대 고용복지수석이 지난달 16일 브리핑에서 한 말이다.
그러나 이상이 교수는 "도서벽지 등의 주민에게 원격의료로 '양질의 의료서비스'를 받게 해주고 싶다면 지금의 제도로도 가능하다"고 반박했다. 현 의료법을 보면 "컴퓨터·화상통신 등을 활용해 먼 곳에 있는 의료인에게 의료지식이나 기술을 지원하는 원격의료를 할 수 있다"고 돼 있다. 즉 의료인 간 원격의료는 가능한 것이다. 정부의 논리가 성립하려면 '의료인 간 원격의료'가 불가능한 '의사 없는 도서벽지'가 있어야 한다. 하지만 복지부조차 "현재 무의촌(의사가 없는 지역)은 사실상 없다"고 말한다. "읍·면·동을 기준으로 했을 때 의사(공중보건의 3000여명 포함)가 없는 곳은 50개 면 정도에 불과하고 이곳들은 큰 도시 바로 옆에 붙어 있어 의사가 없어도 무방하다"는 것이다.
'내가 만드는 복지국가' 김종명 팀장은 "동네의원은 이미 각 지역 곳곳에 깊숙이 들어가 있으며, 의료 접근성을 더 높여주려면 병원급 이상에서 제공할 수 있는 분만·응급의료 서비스 등 2·3차 진료에 대한 접근성이 확보돼야 하는데 이것은 원격의료로 해결할 수 있는 종류의 것이 아니다"라면서 "도서벽지 주민 얘기는 핑계에 불과하다"고 말했다.
<송윤경 기자 kyung@kyunghya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