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크랩] 누가 다녀갔다
누가 다녀갔다
이만섭
나 몰래 누가 다녀갔다
아마도 저녁 무렵이었을 것이다
바람 잦아들고 무직한 어둠 걷어내며
달빛 강물로 밀려와 찰랑일 때,
마음 모서리에서 바투다가
저 미혹할 수밖에 없는
막연한 그가,
그림자 걸음질로
아직 움도 트지 않은
봄꽃 중에 그중 느지막이 핀다는
고염나무 아래로 슬며시 다녀갔을 것이다
꽃이라고 다 비밀히 피는 것인가,
잎 뒤에 숨어있다가 피는 꽃은
더 비밀스럽다
그는 아마 그렇게 다녀갔을 것이다
시방 내 가슴이 숭숭이는 까닭은
그가 나 몰래 다녀갔기 때문이다
자취 없는 빈자리
누가 다녀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