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사♡♡♡칼럼}

신경민과 손석희

이양덕 2009. 4. 13. 21:59




다른 이들은 모르겠지만. 신경민 앵커의 하차소식을 들으면서 나는 손석희를 생각하고 있었다.  다른 이들은 모르겠지만, 나는 신경민이라는 사람을 단순히 mbc뉴스데스크의 앵커로만 기억하지는 않기 때문이다.

출근길의 라디오 프로그램들 중에서 근 10년째 최고의 위치를 점유하고 있는 손석희의 시선집중뒤에는 신경민 아나운서가 진행했던 '뉴스의 광장'이 있었다. 나는 시선집중도 듣고, 뉴스의 광장도 듣는 편이었지만. 때로는 모든 이들이 좋아했던 손석희의 시선집중보다는 신경민의 뉴스의 광장을 더 좋아했다. 아니 내 취향은 시선집중 보다는 뉴스의 광장에 더 쏠려있었다.

손석희의 시선집중은 말 그대로 '집중'이었다. 논란이 되는 뉴스를 선별하여, 그것에 대해 손석희가 집중적으로 따지거나 공격한다. 그 과정에서 이루어지는 건 둘 간의 진검승부다. 그렇지만 승패는 가려지지 않는다. 손석희는 기준을 제시하지 않기 때문이다. 어떤 기준에 의거하여 이것이 옳다. 이것이 옳지 않다고 말할 수 없기 때문이다. 손석희는 판단을 청취자에게 맡긴다. 내가 옳은 것인가. 남이 옳은 것인가. 따라서 손석희는 때로는 청취자를 대리하는 검객이 되기도 하지만. 때로는 청취자의 반대편에서 검을 교환하는 '적수'가 되기도 한다. 따라서 사안에 따라. 손석희는 계속하여 변한다. 김명민이 그랬던 것처럼 손석희는 계속 존재하지 않는다. 그래서 그는 중립을 지킬 수 있고, 사람들에게 신뢰받는 진행자가 될 수 있다. 자신의 색깔을 지우고, 상황에 따라 논란의 핵심을 짚어낼 줄 아는 그의 태도 때문에.

그렇게 펼쳐진 '집중'뒤, 신경민은 자신의 '광장' 앞에서 기준을 제시한다. 신경민의 뉴스에서 우리는 흔히 그의 육성을 접할 수 있다. 손석희가 자신의 의견을 정확하게 밝히지 않는 대신에 신경민은 자신의 의견을 명확히. 그리고 정확하게 전달한다. 그 '기준' 앞에서 옳고, 그른 것, 합당하고 합당하지 않는 것이 구분된다. 그 기준에 대한 판단 역시 청취자의 몫이었지만, 신경민이 가지고 있던 '색깔' 이 명확했음은 분명하다.
나는 그런 신경민이 좋았다. 그의 목소리에서, 그의 태도에서 세상의 옳고 그름에 대해 판단하는 오만한 사람의 품격을 느꼈기 때문이다. 때로는 그가 제시하는 기준이 마음에 들지 않았던 때도 있었지만 나는 그의 목소리에서 엘리트의 숨소리를 생각하고 있었다.






그래서 그가 뉴스데스크의 메인 앵커를 맡는 다는 소식을 들었을 때 나는 기대를 하고 있기도 했고, 우려를 하기도 했다. 기준이 정해지지 않은 이 한국 사회. 때로는 기준이 정해지더라도 사안에 따라, 상대에 따라, 굽혀지거나 매서워 지는 그 기준이 보편화된 이 사회에 신경민이라는 존재는 바른 치유약이 될 수 있었기 때문에 기대했다. 그리고 이를 당연시 여기는 사회 풍토 안에서, 무조건 중립을 지켜야 하고, 옳지 않더라 하더라도 그것을 말하는 것이 기울어진 태도라고 지적받는 이 사회속에서 신경민이라는 존재가 쉽사리 부정당하지 않을까. 우려했었다,


그래서 신경민은 환호 받았고, 비판받았으며, 칭찬받았고, 비난 받았다. 환호와 비난이 공존하는 순간속에서 신경민 앵커는 석연찮은 이유로 물러나게 되었다.

여기서 손석희의 진행 방식과 신경민의 진행 방식 중 무엇이 더 옳고, 무엇이 옳지 않다고 판단할 수는 없다. 나는 그럴 재능도 못되고, 그러고 싶지도 않다. 다만 나는 신경민의 진행방식이 현대의 한국에 필요하다고 생각했을 뿐이다. 부박의 유령이 떠돌아 다니는 한국 사회에서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기준'을 잡아줄 '어른'이었다. 그리고 그어른에게 우리가 기대할 수 있는 건 무엇을 다 해줄 것이다 하는 영웅심리가 아니라. 앞으로 우리가 나아가야 할 길을 알려주는 '안내자'로서의 능력이었다.

신경민이 그러한 능력을 가진 '어른'이라고 확답할 수는 없다. 다만 그는 그런 어른을 태어나게 할 수 있는 '확률'을 만들고, 토양을 만들어 낼 수 잇는 사람이었다. 옳고 그름을 꿰뚫어 보고 제시할 줄 아는 '앵커'로서 신경민은 확실히 한국에 필요한 사람이었다. 그리고 세상은 그가 중립적이지 않다는 이유도. 다시 말하자면 '기준'을 제시한다는 이유로, 그 이유 하나 만으로 그를 몰아내고 있다.



앞으로 나는 손석희를 생각할 때 마다 신경민을 생각하게 될 것이다. 그것은 손석희가 가지고 있는 재능이 신경민 보다 못하기 때문이 아니고, 신경민이 한국에 필요한 인물이어서도 안된다. 같은 목표를 가지고 있고, 같은 저널리스트임에도, 손석희는 인정받고, 신경민은 배척받는 이 사회를 다시 셍각해 보고 싶기 때문이다.


ps) 이 글은 계속 해서 수정될 예정. 지금은 시간이 없어서 제대로 수정을 못함. 언제나 생각하는 거지만 난 참 글 못 쓰는 편...

ps2) 오늘 발행된 시사인 잡지를 읽다가 현재 사태를 예견한 듯한 신경민 앵커와의 인터뷰를 보았습니다. 거기서 신경민 앵커는 자신을 둘러싼 논란에 대해, 자신이 가지고 있는 엥커 멘트에 대한 소신이 작년 12월 31일에 있었던 클로징 멘트라고 밝혔습니다. 그 클로징 멘트를 소개하며 이 졸렬한 글을 마치고자 합니다.

원본: http://imnews.imbc.com/replay/nwdesk/article/2261508_2687.html

2008년 12월 31일 mbc 뉴스데스크 신경민 앵커 클로징 멘트 전문

: 올 한해 클로징에서 하고 싶었던 얘기는 원칙이 숨 쉬면서 곳곳에 합리가 흐르는 사회였습니다.
그것은 민주주의, 책임, 신뢰, 안전이었고 힘에 대한 감시와 약자배려를 뜻합니다.
내용을 두고 논란과 찬반이 있다는 점 알고 있습니다.
불편해 하는 분들에게 미안하지만 이 꿈과 소망은 바꾸거나 버릴 수 있는 게 아닙니다.
함께 가져야 하는 겁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