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만섭시인서재}

고양이를 부탁하는 이유

이양덕 2009. 6. 15. 11:39

 

 

 

고양이를 부탁하는 이유

 

 

이만섭

 

 

  

저 불온한 눈빛을 대할 때면
무언가 알 수 없는 음모에 가담하는 나는
미필적 고의의 배후가 된다

 
빈집이나 무너진 흙담 가
그늘 짙은 불두화나무 아래랄지
인적 드문 골목길도 만만치는 않은데
그 통로를 지나야 이를 수 있는 비밀의 문이 있기에
번번이 외면당하면서도 나는
저 발칙한 심보를 굳이 왜 부탁하는 것일까, 


저도, 저녁이 오면 식솔들을 거느리고 

끼니때에 든다는 것이다

어슬렁어슬렁 긴장과 해이를 반복하는 기이한 의태법으로
사선을 넘어와서 환생하여 귀환하는 뒷모습은 

마치 생의 끈을 팽팽히 당겨 놓은 듯
허술한 매듭이라고는 찾아볼 수가 없다

 
파고다 공원 앞, 삼일문 기둥 아래
한 사내가 어둠보다 먼저 서가숙에 들었다
도시의 처마가 미필적 고의의 배후가 되어버린 저녁
해진 생의 끈으로 올무를 짓고
초췌한 몰골로 나동그라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