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만섭시인서재}
겨울나무의 進化
이양덕
2010. 1. 11. 22:02
겨울나무의 진화 /이만섭
이 땅의 연연 가운데 가장 깊은 것은 뿌리이겠다
뿌리를 내리지 못해 고사한 나무 그 얼마인가
벌거벗을 때까지 진화해온
그러고도 끄떡없는 나무여
기다림은 이토록 멀기만 한가,
지나온 계절을 다 비우고
직립으로 서 있는 목록을 읽는다
육탈에 든 듯, 성스럽다,
꽃과 인연을 맺는 게 봄이었다면
여름은 이파리와 더불어 생을 누렸다
가을은 그대품에 머물며
열매를 익히고 떠났는가,
깡그리 비운 몸은
마침내 저토록 핍진한 사유에 이르렀다
몸을 비워가며 진화해 온 표정이 담백하다
저것이 담백한 기다림이라면
뿌리가 일러주었으리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