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만섭시인서재}

봄책의 문장은 만연체이다

이양덕 2010. 4. 8. 17:17

봄책의 문장은 만연체다/ 이만섭

 

 

 

봄책을 읽는 데는 다소 인내가 필요하다

서론이 너무 길다는 것이다

그렇기에 독자는 자칫 해이해질 우려가 있다

느릿거린 행간에 중언부언 쓰인 기상해설이며

첫 장부터 긴밀성을 떨어뜨린다

예를 들어, 입춘 이래 진달래까지

진달래 이후 벚꽃이나 살구꽃까지

구절마다 기다림 일색의 췌사다

꽃을 은유한 지문이 수미쌍관 감정이입만을 다루고 있다

하기야 얼마나 메마른 겨울을 견뎌냈던가,

꽃나무만 해도 할 말이 너무 많은 것이다

그러나, 그 후 몰려오듯 쓰인 꽃들에 대한 문장은

내가 궁금해하는 사과꽃이나 앵두꽃 같은 추억거리도

꽃의 주변만 왁자지껄하게 나열해 놓고 있다

그마저도 집중할 만하면

황사 따위의 활자가 독서력을 어지럽힌다

오늘 내가 읽는 405페이지가 그렇다

모쪼록 청명절의 햇살이 창에 눈부신데

생각하면 가슴까지 환해지는 명자꽃인데

어릴 적 누님과의 추억은 어느 행간에도 없고

공원에 분홍빛 꽃봉오리만 수줍었다

저 꽃 피면 붉다는 것을 

꽃의 뒤편에 이내 연두가 돋아날 것도 나는 안다

그렇게 봄날은 무연히 질 것이고

그런 줄 알고 읽는 만연체 문장의 봄책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