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양덕
2010. 6. 28. 15:02
풀/ 이만섭
아버지는 밭에 가시면
곡식 안 되는 것은 죄다 뽑아버리라고 말씀하셨다
그래서 여름날의 밭은
풀의 수난사다
밤사이 줄기를 뻗어 빨치산처럼 급습해온 비탈밭의 보래기며
팔다리 뚝뚝 분질러놓아도 비만 오면 슬금슬금 밭고랑으로 기어드는 쇠비름잎들
본래 그것들은 순하디순한 풀이었다
이 땅의 파수꾼으로 살아가기 위해
비바람으로부터 억척스러워진 것뿐인데,
그럴 때면 나는 땅이 풀 없는 황무지가 될까 봐 걱정했다
온갖 고난에도
가을이면 대지의 곡식으로 열매 맺는 푸나무
이 땅을 지켜낸 것이 대견하다
우리 집을 건사하신 아버지
돌이켜보면 풀의 다른 이름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