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만섭시인서재}

나무의 성선설

이양덕 2010. 7. 14. 17:50

 나무의 성선설 / 이만섭    

 

 

 

어릴 적 여름날이면 나는

마을 당산나무에 올라가 놀곤 했는데

아름드리 팽나무의 시원한 그늘 때문만은 아니었던 듯싶다

때론 만만함으로, 때론 편한함으로,

나무는 늙어 곳곳이 주름투성이였지만 

마치 할아버지가 손자를 돌보듯이 손잡아 주곤 했는데

그럴 때면 가지와 가지 사이를 새처럼 옮겨다니고

나무의 친화력은 내 이름자를 외우고 있기라도 하는 양

언제라도 기탄없이 맞이했다

그 사이에 딱총놀이에 쓰일 열매를 따기 위해

나는 잎사귀 새파란 가지를 꺾고, 

“야야! 떨어질라, 하필 나무에 올라가 노냐. 무섭지도 않냐?”

지나는 마을 사람들 한마디씩 거들고

그때야 마지못해 내려오면

나무 아래 꺾인 팽나무 가지와 흩어진 푸른 열매들,

다음날에 다시 찾아가면 아무 일 없었다는 듯 

나무는 잎을 흔들어 흔연스럽게 맞이하고,

곰곰이 생각해보면 팽나무 굳은살이 박이도록 장수한 까닭이

그 태연자약한 심성이었던 것 같다

나무는 뿌리가 키만큼 뻗어 간다는데

내가 꺾은 나뭇가지와 함께 자란 뿌리는 얼마나 상심했을까

흙 속에 박힌 그 뿌리의 본성이 아직도 궁금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