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만섭시인서재}
겨울유적지를 가다 /이만섭
이양덕
2010. 12. 6. 18:40
겨울유적지를 가다
이만섭
바람이 잦아든 사이 풍장의 뼈들을 밟고 선다
묵념처럼 고즈넉이 옷 벗은 나무들
계절의 첨탑인 듯 회색 하늘을 우러렀다
살보다 더 적나라하게 봉분으로 드러누운 뼈들 사이에서
삶의 체취를 재는 발길
생이 융성했던 자리마다 깊게 파인 발자국이
저녁을 비끼는 햇살에 조각난 사금파리처럼 반짝인다
저 궁륭으로 생을 감당해온 세월이 소멸하고
마침내 뼈들이 들어선 것이다
뼈는 인동에 태어나는 것일까,
살들이 떠난 자리에 침목처럼 우뚝우뚝 솟으며
종을 치듯 시나브로 생의 유적을 알리는 바람
나무는 앞장서서 길을 내며 분진으로 덮인 성곽을 끌고 온다
태양이 떠난 자리에 겨울을 들인 것이다
우르르 떠났던 철새들 몰려오고
살들로 쓰인 계절의 역사가 뼈의 유적으로 남아
경이로운 풍경의 출현을 기다린다
누군가 가슴 울렁거림으로 이곳에 낭만을 찍을까,
뽀드득뽀드득 귀엣말로 들리는 환희의 옥타브
생각만 해도 점점 가슴 부푼다
뼈의 탄생으로 가득한 겨울유적지에
나를 안내한 이 누구일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