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만섭시인서재}
겨울의 깊이
이양덕
2010. 12. 17. 13:04
겨울의 깊이 / 이만섭
외출에서 귀가하는 저녁
목덜미를 움켜쥐는 바람손을 뿌리치다가
누에섶을 올리는 천지간을 본다
나무들 벌거벗은 채 뿌리를 껴입고
깃털을 부풀려 서녘을 나는 새떼들,
바람에 날개를 달아주고 지층에 바짝 엎드린 허허벌판이
폐사지의 기왓장처럼 검게 그을렸다
시시각각 이는 생각들 좇는 저편
지평의 끝은 징소리도 닿지 않을 듯
낮아진 것들은 동면에 들고
높아진 것들은 아득하여 정처 없다
나도 나의 저녁에 닿으면
빗장을 걸고 아랫목을 차지하겠지
그런 저녁은 함박눈이라도 내려
황망한 사위가 한 점 자취 없이 잠기어
기억 한가운데로 고스란히 내려가서
아슴아슴한 추억들을 풀어놓고 뒤적거리다가
그만 적막으로 덮여갔으면,
그리하여 어슴푸레한 시간으로부터 점차 뚜렸해지는 음각들,
그렇게 동면으로 한 몸 궁리에 들었다가
봄이 오면 적막의 껍질을 벗고
씨앗처럼 깨어났으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