꽃 피고 꽃 지고 /이만섭
꽃 피고 꽃 지는 사이
누군가 기다리다가 길 떠났고 또 누군가는
끝끝내 남아 꽃과 더불어 산다
꽃은 혼자만의 꽃일까,
언제나 피어도 갈망으로 피는 게 꽃인 것을
어느 약속으로 오는지 알 수 없으나
난만해질 때로 난만해져 더는 교감할 수 없을 때
꽃은 지고, 떨어진 꽃을
꽃의 잔해라고 부르지 않는 까닭은
꽃이 삶의 상처를 어루만져주었기 때문이다
그동안 꽃은 아름다움만을 보여주기 위해 핀 것이 아니었다
세속의 노역을 해방시키기 위하여 피었고
그럼에도 꽃은 지고,
저 홀로 붉어 산유화로 피는 진달래나
담장 가에 기린 목으로 꽃대 올린 흰 목련조차도
모두 세속에 대한 구원으로 피었건만
더는 머물 수 없는 세월에 아름다움조차 무덤처럼 내주고
그렇듯 아름다울 때 아름다움을 다 했으니
누군들 지는 꽃을 섧다 아니할 것인가
이제 꽃은 우리에게 면죄부를 주었건만
우리는 무엇으로 답할 것인가
아직 화해하지 못하여 세속에 붙들린 마음이
저 낙화하는 꽃잎에
손길 얼마나 길게 내뻗을 수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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