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만섭시인서재}

당신의 속독법

이양덕 2011. 6. 5. 19:53

 

 

 

    당신의 속독법  /이만섭

 

  

 

     당신을 읽는다 당신이 나를 읽는 동안

     나는 소리 내어 읽지 않고

     당신은 낭랑한 목소리로 읽는다

     언제부터인가 나는 당신의 독서편력에 중독되어버렸다

     머리끝에서 발끝까지 한눈에 읽는 당신

     나의 행간이 은유로 쓰여 있으면 그럴 때도

     호흡을 가다듬고 눈빛을 투사하면

     감춰진 부분들은 투명한 사물을 들여다보듯

     금세 환유의 미끼에 걸려들고

     감전된 물고기가 배를 까뒤집듯 훤히 읽힌다

     나는 그것이 당신의 독심술이라는 것을 안다

     삶도 그처럼 쉽사리 읽어버리면

     기다리는 것은 책의 뒤표지 같은 것이 아닐는지,

     책장의 그늘과 책장의 무게와

     행간 어딘가에서 놓쳐버린 생략된 생의 의미들이

     삶의 등 뒤에 고스란히 남아

     일광이 이마를 비추고 올 때도

     앞섶에 그림자 드리우면 어쩌나 하고,

     나는 거울 속 당신을 생각한다

     하나였다가 둘로 서 있는 또 다른 당신의 모습을,

     오늘도 외출하려는 나를 불러 세워 

     옷에 묻은 보푸라기 한 올도 놓치지 않으려는 듯

     분주히 나를 읽는 당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