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만섭시인서재}

푸른 셔츠를 입을 때

이양덕 2011. 7. 3. 23:14

푸른 셔츠를 입을 때 /이만섭

 


 

두 팔을 벌리면 둥근 몸이 네모가 되는 것을 아시는지

모서리마다 드러난 뼈는 허수아비를 닮았어도

셔츠가 나를 솔기 없이 기워놓았다

그런 나를 보는 당신을 착시라고 말하지 않는다

무언가 골똘하다 보면 감정이 들어서고

마음에도 통로가 생기는 법이다

셔츠가 가슴의 얼굴이 된 사연이 그것이다

그것들은 삶 속으로 고스란히 길처럼 들어앉았다

나는 다시 푸른 셔츠를 거울에 비춘다

차운 색깔이 이렇게 온화하다니

편편함은 이뿐일까, 썩 헐렁해지고 싶다

윗단추 하나 더 풀어 고인 체온을 뿜어낸다

원래 셔츠는 겉옷과 살갗 사이에서 근위병처럼

체온을 지키던 속옷이었지만

어느 사이엔가 몸의 외경을 자처하고 있다

짐짓 알고 있던 것을 새삼스럽게 깨달은 듯

거울 앞에 다시 두 팔을 벌려 虛手의 표정을 짓는다

바람이 겨드랑이 사이에 훅, 하고 안기는데

더는 네모를 기억하는 내가 어색하다

털이 자란 새처럼 공중을 향해 팔락거리는 소맷자락은

내 몸의 증거를 말하고 있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