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만섭시인서재}
얼룩말 장화
이양덕
2011. 7. 5. 09:55
얼룩말 장화
-사파리 룩(safari look)을 찾아서
이만섭
장맛비를 헤치고 아내와 찾아간 곳은
얼룩말들이 쫓겨 온 사바나의 한 구릉지대였다
말들은 우리를 보자마자 자유롭던 망중한을 접고
갈기 휘날리는 생의 발굽 소리로
초원 일대가 흙먼지로 뿌옇게 풀썩거렸다
비가 주춤하는 사이
태양은 사보텐이라도 피워낼 듯 작열했고
초원을 달리던 말들은 더욱 또렷해져
아내는 연방 얼룩말의 건각에 눈길을 떼지 못하는데
마라강 언덕 쪽으로 무지개가 칠색조처럼 아름답게 피어올랐다
저거야, 아내의 환호성이 터지고
채찍비가 한바탕 훑고 간 맹그로보 숲가에
유난히 흑백이 선명한 얼룩말떼가 웅성거리고 있었다
빗속을 달려왔으나 보송보송한 모습으로
그것은 우기를 건너온 횡축의 거대한 원근법이었다
사바나에서 뛰는 것들이 말뿐일까만
초원에 흙먼지를 날리며 임팔라도 타조도 기린도
쫓고 쫓기는 절체절명의 순간 속에서
말들은 또다시 발굽과 발굽의 간격을 견지하며
타각타각 생의 행로을 찾아 유유히 초원을 빠져나가고
아내와 내가 그 뒤를 좇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