감감
감감 /이만섭
내 가슴 속의 우편함이여,
내 그대를 위한 어떤 美化도 없음에
편지 한 장 부치지 못하고
살아가는 날들이 이렇듯 흘러왔구나,
오늘같이 찬비 내리는 날
문 닫고 등걸잠을 청하다가 천장 한구석에
외롭게 집을 짓는 거미의 꽁무니가 달고 간
실금 같은 세월의 거리를 잰다
아득하고 아득하여라,
궂은 날이나 갠 날이나
그늘 짙은 어둠 속을 돌문 하나 지고
외로이 비켜간 시간들,
그 세월에도 산 넘지 못하고 물 건너지 못해
벽으로 문을 내고 나는 삶의 난간에다가
그 많은 안부들을 방치해놓았구나
세상의 소식들은 가만히 있어도 귀로 흘러드는데
빛바랜 시간들을
대체 나는 무엇에 쓰려 했는지
봄이 와도 꽃 피었다는 말, 하지 못하고
가을이 와도 열매 맺었다는 말, 하지 못했으니
생명의 환희들이 이리도 무심하게
삶의 저편으로 흘러가고 말았구나,
이 궂은 날, 아득해진 시간들이
와락 휘감아오는 이유는 무슨 까닭일까,
귀머거리 같은 세월에 묻고 싶다
세월의 비바람에 녹슨 철제함이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