語錄 (어록)외 1편 /이만섭
語錄 (어록) /이만섭
세상의 말들은 무덤이 없다
어떤 말은 죽고,
어떤 말은 잠들고,
어떤 말은 새겨지고,
난무하는 군중 속에서 행불자가 된 말도
저 혼자 질주하다가 전복 되어 아웃사이더가 된 말도
무덤을 따로 갖는 법은 없다
사라지거나 존재하는 이분법만이 있을 뿐이다
또 어떤 말은 성대질환으로
읽어도 읽어도 혼탁하게 들리고
그 저항성 때문에 귀청이 거슬려도
말의 내력으로부터 추방할 수는 없다
나는 지금 어느 말들이
불사조처럼 사유의 영역을 나는
존재하는 말 사이에 있다
부단하고 부단하게, 내 진부함을 환기 시키며,
그것은 변함없이 있었던 일이지만
새삼스럽게 말을 붙들어
입으로 읽고 귀로 듣는다
풀들이 무성한 어느 여름
도봉산 골짜기에서 만난 풀에 대한 말이
두고두고 내 가슴에서
푸른 날갯짓을 하니
시 한 편이 모조리 경전이 되었구나
가장 우아하게
목록을 열거해 봐
얼룩말 장화
-사파리 룩(safari look)을 찾아서
이만섭
장맛비를 헤치고 아내와 찾아간 곳은
얼룩말들이 쫓겨 온 사바나의 한 구릉지대였다
말들은 우리를 보자마자 자유롭던 망중한을 접고
갈기 휘날리는 생의 발굽 소리로
초원 일대가 흙먼지로 뿌옇게 풀썩거렸다
비가 주춤하는 사이
태양은 사보텐이라도 피워낼 듯 작열했고
초원을 달리던 말들은 더욱 또렷해져
아내는 연방 얼룩말의 건각에 눈길을 떼지 못하는데
마라강 언덕 쪽으로 무지개가 칠색조처럼 아름답게 피어올랐다
저거야, 아내의 환호성이 터지고
채찍비가 한바탕 훑고 간 맹그로보 숲가에
유난히 흑백이 선명한 얼룩말떼가 웅성거리고 있었다
빗속을 달려왔으나 보송보송한 모습으로
그것은 우기를 건너온 횡축의 거대한 원근법이었다
사바나에서 뛰는 것들이 말뿐일까만
초원에 흙먼지를 날리며 임팔라도 타조도 기린도
쫓고 쫓기는 절체절명의 순간 속에서
말들은 또다시 발굽과 발굽의 간격을 견지하며
타각타각 생의 행로을 찾아 유유히 초원을 빠져나가고
아내와 내가 그 뒤를 좇고 있었다
『시와 정신 2011 가을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