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만섭시인서재}

진객 - 이만섭

이양덕 2011. 12. 5. 08:44

 

 

 

 

진객 /이만섭 

 

 

겨울강이 마른 수위를 조절하고 있다

흘러도 흐르지 않는 물녘에

눈먼 철새들 날아오다가도

흰 똬리를 틀고 앉은 저수지로 돌아가고

그곳에서 깃털을 고르겠지

그러는 동안 해의 빠듯한 일정이

물의 갈증을 부추기다가 다다른 저물녘

누가 묻지 않아도

겨울 강물은 한 길 기다림이다

그렇게 저녁에 당도할 때쯤 수원지 너머에서

우아한 깃털을 날려 보내는 새가 있다

빛들은 풍경을 지우기 시작하는데

물의 심장을 겨누기라도 하듯

강줄기 쪽으로 산그늘을 횡단하며

풍차 같은 날개로 황량을 펴놓은 자리를 쓸어내며

수표면을 탁탁 치고 내려앉는 고니떼들

기다란 목을 물 위에 얹으며

강물과 스킨십이다

차운 물결이 온기를 얻은 듯

호흡이 술렁이기 시작하고

강물이 설레는 것을 처음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