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만섭시인서재}

겨울 入門 - 이만섭

이양덕 2011. 12. 11. 13:29

 

                                                          

 

 

 

겨울 入門  /이만섭

 

 

 

흐린 저녁으로 겨울 온다

어둑어둑 몰려오다가 가까이에서

알전구를 켠 듯 환해진다

불빛들을 손가락으로 문지르니

차가운 유리판이 이내 온기로 번진다

창은 흐려지면 흐려질수록 더욱 또렷해지는

또 하나의 얼굴을 들여놓고

침묵하는 바깥의 세계

얼굴의 눈빛과 내 눈빛이 마주치다가

우리는 속을 들켜버린 듯

함께 머나먼 순례의 길에 든다

사람들이 눈을 뭉치고

눈을 궁굴리고 눈사람을 만드는 것은

무슨 이유에서 일까

그 속에서 꿈꾸고 싶은 것이라도 있을까,

순례의 끝에 어둑발이 걷히고

훤훤지평이 열리듯

천지간에 하얗게 걸리는 성문 하나

그 안으로 몸을 들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