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만섭시인서재}
고양이를 엿보다 ㅡ 이만섭
이양덕
2012. 1. 1. 15:23
고양이를 엿보다
이만섭
우리의 비밀 사이에 고양이가 있다
아닌 척해도 한 발 한 발 내딛는 은근한 발놀림이며
노란 눈빛을 보면 얼른 알 수 있다
고양이는 또 어디서 무엇을 하고 오는지
수직 건물이 뉘어놓은 막대그래프 같은 그림자를 밟고
교묘한 눈빛으로 걸어 나온다
등판에는 어둠을 벗은 허물 자국이 걸려 있지만
그늘을 빠져나오면 아무 일 없었던 듯
더는 비밀을 확인할 수 없어 궁금증만 커진다
그 사이 살며시 지나가는 꼬리 끝에
또 다른 눈동자가 한순간 보였다가 사라진다
고양이를 만나는 일은 눈빛과 눈빛의 충돌이다
그렇다면 피할 수밖에 없겠는데
간혹 부드러운 털로 어슬렁거릴 때를 목격하다 보면
햇빛 온도에 몸을 맡긴 뒤
양지에 뱃가죽을 깔고 파충류처럼 일광욕을 즐기는데
그 틈으로 모르는 척 다가가지만
잠잠히 눈꺼풀을 여닫는 듯해도
우리는 이미 고양이에게 들켜버리고 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