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만섭시인서재}

사과라고 부르는 말은 ㅡ 이만섭

이양덕 2012. 1. 21. 18: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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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과라고 부르는 말은 /이만섭

 

 

한 개의 사과 열 개의 사과

혹은 모든 사과를 사과라고 부른다

나무에서 열매로 달려 있을 때나

상자 깊이 담겨 있을 때나

식탁 위에 다소곳이 놓여 있을 때나

때와 장소를 가리지 않고

제 몸속에 든 향낭을 톡톡 터트려

향기로 부름을 받는 사과는

수줍은 듯 빨개진 동그란 낯으로도

충분히 밝은 귀를 가졌다

사과가 그처럼 제 이름을 감사히 여기는 데는

한결같이 간직한 약속이 있겠다

속살이 사각거리는 상큼한 소리를

언제든지 부끄러움을 무릅쓰고 함께 나누고 싶어

아침 창을 비추는 햇살 같은 표정으로

제 이름을 호명하는 듯 귀를 세우는 것인데

누구라도 사과라고 부르기를

주저할 리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