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만섭시인서재}

강대나무 눈꽃을 보며 ㅡ 이만섭

이양덕 2012. 1. 26. 21:56

 

 

 

 

       강대나무 눈꽃을 보며 

 

 

        이만섭

 

 

 

       꽃은 와서 피었다

       까맣게 지워진 길을 좇던 곳으로

       새로운 길을 내며 적운층을 날아온 칼새가

       제 깃을 뽑아 둥지를 틀듯이

       유폐의 자리에 흰 꽃차례를 짓고

       온기 어린 손길이 닿은 적막이 아늑하다

       겨울나무에 핀 꽃들 同色인 줄 알지만

       기다림조차 소멸한 자리에

       살을 비비며 피워낸 꽃은 더욱 희고 곱다

       물관이 고갈하여 말라죽은 처연한 생을

       차마 가장 아름답게 문상한다

       차운 가슴에 서린 한을 닦아내듯

       봄을 기다릴 수 없는 나무의 영혼에 대한

       심심한 위로인지도 모른다

       저 척박한 주검의 제단에 예를 갖추어

       꽃을 바치는 고결한 자태에

       고갤 숙일 수밖에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