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만섭시인서재}

조은 치과 ㅡ 이만섭

이양덕 2012. 1. 29. 20:09

 

 

 

 

    조은 치과

 

                      이만섭

    

 

 

      사랑니를 앓던 빛나던 청춘이 있었다

      씩씩거리며 쫓아오는 통증에 맞서

      거울을 들여다보듯 노래하던 태연자약한 아픔으로

      참아내다가 음절이 끊기고 붉어진 눈시울은

      저 떨어져 나간 ‘조은 치과’의 ‘ㅎ’ 밭침이라도 얻을 수 있었다면

      낯꽃이라도 환해질 수 있었을 텐데

      욱신거리는 어금니에 진통의 거즈를 물고 있던

      이지러진 표정은 팽팽하게 펴지고 싶어

      세상 밖에 나눠주려고 떼어버린 자음을

      그리워할 수밖에 없음에

      내 구강은 그쪽을 향해 여전히 담론 중이다

      치아를 다 드러낸 채 미용실 같은 환자실에서 칙칙-

      귀로 흘러드는 소리를 느낄 때

      치료사의 손길은 그만큼 가깝다

      오늘도 그 소리에서 깨어나기 위해

      ‘조은 치과’ 이 층 돌계단을 오르는 동안에도

      열 시 반의 아침 햇살이 창을 뚫고 돌角의 난간에 부딪히는데

      역광으로 비추던 눈부신 상앗빛은

      회전의자에 기대어 꿈결인 듯한 자세로

      리시버를 꽂고 듣는 상쾌한 왈츠 곡에 맞춰

      프리지어 꽃다발을 들고 치즈치즈를 연발하며

      사진사 앞에서 고른 치열로 환하게 웃는

      입학식 날 소녀들의 얼굴이 보인다

      까르르 흩어지던 그 웃음소리에서 들리던

      떨어져 나간 홀가분한 히읗 밭침은

      어디서 모국어의 해맑은 웃음을 물색하는 중일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