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만섭시인서재}

아는 사람 ㅡ 이만섭

이양덕 2012. 2. 29. 11:23

 

 

 

 

    아는 사람 /이만섭

 

 

   

      어느 모퉁이 길은

      길보다는 담벼락이 더 생생하다 

      소변금지라고 써놓은 낙서가 아직도 선명한데

      기억은 버젓이 길을 지우고

      무심을 들인 마음이 계면쩍다  

      내 지나온 길이 몸인데 그럴 수 있을까 싶어

      어둑하게 가린 몸을 뒤적거려도

      회칠한 얼굴로 비켜보는 담벼락은

      낙서만 문신처럼 새겨놓았다

      길은 지워져도 말을 걸어오는 법인데

      침묵하는 담벼락을 앞세우고

      그가 악수를 청해 와도 딴전을 피우듯

      나도 원근법을 빌려 쓴다 

      그쪽의 내 얼굴이라는 것도

      문밖에 세워놓은 이끼 낀 말뚝과 같아

      손짓의 거리에서 나누는 악수여

      손바닥이 굴참나무 껍질처럼 딱딱하구나

      우리는 그만큼의 겉 표정으로

      저만치에 비켜 있으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