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만섭시인서재}

불기심난(不欺心蘭)*을 詩로 읽다 - 이만섭

이양덕 2012. 4. 12. 09:29

 

 

불기심난(不欺心蘭)*을 詩로 읽다

 

     이만섭

 

 

 

한 포기 넌출거리는 해묵은 잎들은

마땅히 盆에 짓지 못하고

좌우대칭으로 뻗어 나간  잎 그대로 수묵으로 옮겨놓았다

난을 빌려 마음을 전하는 데는 말의 뜻을 지극하게 드러내는 일일 것이니

불기심난을 詩로 읽는다 

 

나는 시를 쓰면서 나를 속인 적은 없는가,

나의 시는 나 이전에 무엇이었던가,

딱딱한 사물이었다면 부드러운 의미에 이르기 위해

돌은 내게 와서 물이 되지는 않았는가,

허공에 펼친 학의 날개 같은 저 자태는 

졸박한 筆勢를 얻은 몸짓이려니 꽃을 취한 은일함은

성근 잎에도 한 겹 향이 배어 있다 

 

본디 춘란이란 한 대공에 한 꽃차례를 얻는 것이어서

꽃이 열둘인들 각기 다른 잎과 꽃의 조화로운 형세가 그 기품일진대,

더욱이 잎은 삼전의 준칙을 얻어 속되고 번드르르한 기풍을 걸러냈으니

시를 짓는 일이 이와 다를 것인가, 

 

무릇 문장에 거리낌이 없다는 것은 저와 같은 내막일 것이다

돌의 이끼가 고요를 즐길 때 푸른 미소로 화답하는 돌은

침묵으로도 천 년에 이른다

 

 

*추사가 아들에게 그려준 묵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