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만섭시인서재}
미혹의 前歷 - 이만섭
이양덕
2012. 6. 11. 08:50
미혹의 前歷 /이만섭
장미를 오랫동안 바라보다가
현기증이 일어 몸이 흘러내린 적 있네.
매혹의 경계를 넘을 때
뼈라는 뼈는 모두 바람이 들어
풍선처럼 부풀기 시작하는데
바닥에 쓰러지듯 주저앉던 몸이
이내 허공으로 솟구치는 것을 보았네
꽃의 돌기 속으로 들어간 내가
나비처럼 코를 처박고 있는 것이 아닌가,
노란 꽃술로 분칠한 얼굴은 달밤처럼 몽롱키만 한데
꽃잎들 겹겹이 포개어 몸을 에우고
향기의 파장에 끌려다니다가 길을 잃고
어슬녘 어느 객관에서 그만 혼자 깊고 푸른 잠이 들었네
그 저녁은 꽃을 지우고 왔네
밤이 부를 때 창을 건너오는 어둠이 아닌
벽을 세워 직립으로 깃들었네
꽃의 물색이 몸을 동이었으니
어둠 속에서도 유곽의 웃음소리가
허공의 창에 귀를 걸어놓건만
장미 향기는 어디에도 없었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