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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나온 청춘에 바치는 송가 6 - 송경동

이양덕 2012. 7. 19. 07:31

지나온 청춘에 바치는 송가 6

-영등포역 연가

 

   송경동

 

 

 

고향이 전남 벌교에

터 잡은 곳이 구로동이다 보니

수없이 영등포역에서 내렸다

맨 처음은 스무 살이었다

가방이 없어 종이 백 세 개에

잔뜩 옷가지가 담겨 있었다

스물셋 두 번째 상경 땐

큰 가방 하나에 작은 가방 두 개였다

십여 년이 흘러 다시 내릴 땐

한 여인과 갓 돌 지난

조그만 아이가 내 옆에 있었다

창피하다고 젊어서는 안 들고 가겠다 했지만

체면보다 생활이 먼저임을 깨달아갈 무렵엔

조기거나 양태거나 떡이 꽁꽁 얼려 있는

상자 두어 개를 낑낑거리며

들고 내려왔다 어떤 땐 잎 지는 가을이었고

어떤 땐 조용히 눈 내리는 겨울이었다

바람 불던 날

비 오던 날도 많았다

다시는 내려가지 않겠다고

이 악물던 날도 많았고

어떻게든 살아봐야 하지 않겠냐고

다시 발을 떼던 때도 많았다

 

아이도 다 크고

이제 내 곁엔 다시 아무도 없다

이 계단을 몇 번만 더 오르내리면

그것으로 그만일 수도 있다

거기 이십여 년째 줄 지어 잠들거나

소주병을 까고 있는 노숙인들이 남 같지 않다

그 틈 어디엔가

불쑥 끼어들어 눕고 싶을 때도 많았다

돌이킬 수 없지만

사는 것 그게 꼭 특별해야 한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나는 언젠가 사라질 것이며

다시 영등포역 계단을 오르내리는

한 소년이 한 청년이 한 사내가

한 노인이 있을 것이다

그에게 그들에게

부디 충만한 사랑과 행복만이 함께하기를

 

 

 

     —《문예중앙》2012년 여름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