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만섭시인서재}
매우 서사적인 김밥에 대해 ㅡ 이만섭
이양덕
2012. 11. 24. 15:36
매우 서사적인 김밥에 대해
이만섭
먼동을 비켜 온 햇살이 무동을 타는 소춘의 아침
밑줄을 긋듯이 김밥을 마는 아내를 보며
김밥이 기차라는 생각을 한다.
바스락거리며 밥을 껴안고 뒹구는 김을
검은 기차 바퀴처럼 둥글게 굴리며
어디를 향하는 것인가,
간단히 한 줄 산뜻한 아침을 사용하고 있는 것뿐인데
보아하니 흥은 교외선을 타기 직전이다.
갓 말아놓은 식탁 위의 김밥은
어쩐지 정거장에 서 있는 기차 같다.
나는 여행객처럼 서성인다. 이윽고
기차에 실려 가는 나와 김밥이 가져다줄
낭창낭창한 풍경에 대해, 설렘을 추스르기도 전에
내가 탄 기차는 샛바람을 가른다.
팔당호를 지나 이두수에 이르니 북한강
안갯속에서 깨어나는 강물이 후-하고 입김을 내 품는다.
배낭이 품고 있는 김밥의 온기와 만나는 것인데
나바호족처럼 기차를 습격하는 안개 떼들
강물에 낯을 씻다가 일제히 비상하는 흰 고니,
물녘에서 일어나는 충돌을 조율하려 드니
강물 사이에 나무들과 들풀을 비켜 세운
나를 맞는 가을 산이 거수경례를 한다.
터널을 지나 기찻길이 등을 보일 때
기차의 꽁무니를 따라오는 것들에 손 흔들어주다가
어느덧 김밥은 나만의 김밥이 아니고
풍경과 더불어 나눠야 하는 것이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