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만섭시인서재}

어느 새벽 3시의 오디세이 ㅡ 이만섭

이양덕 2013. 5. 17. 13:59

 

 

 

 

 

 

 

어느 새벽 3시의 오디세이

 

 

 

  이만섭

 

 

 

 

 

 

어느 날 갑자기 새벽 3시가 나를 깨운다

충전을 끝내고 플러그를 뽑아버리듯이

촉수를 심장에 얹혀 한방에

나를 일으켜 세운 그는 누구인가

내 캄캄한 수면을 방부처리 해 불면으로 돌려놓고

사실확인을 하듯 옆구릴 쿡 질러본다

화들짝 놀라 관등성명을 대는 불침번처럼 나는

한 번 더 자세를 고쳐먹고

그는 찬 이슬 머금은 말똥말똥한 눈빛으로

창세기처럼 한 말씀 내려놓는다

서쪽으로 가라, 서쪽으로 가라,

휴식이란 천지간 어디에도 없으니 지체 말고 서쪽으로 가라

아침은 그곳에서 기다리니 가다가 어디쯤에서

가문비나무 붉은 대공 위에 걸린 눈썹달이나 내려주고 가라

그도 청천에 이르지 못한 그리움 때문에

나뭇가지 사이에서 오도 가도 못해 울고 있다

서둘러 나는 밤의 수명을 나누어 가진다

어둠이 두 개로 갈라진다

나를 붙든 사위의 어둠과 나를 깨워 그것 밖으로 떠미는 손길과

내 몸이 집의 곤한 처마 밑을 빠져나갈 때

나무 그림자 우러러보니 달은 나를 기다리다가 떠났다

빈 가지에 때늦은 죄책감이 어리어 있다

한 번도 사용한 적 없는 기억이 투명하게 생겨난다

달빛 없는 고요한 뜰, 이곳은 어디인가

말씀의 지문을 따라 가니

이별도 모르고 설움도 모르는 달개비꽃들

새벽안개에 젖어 있다

뜬눈으로 나를 지켜보았던 뭇별들 희미해진 밤을 건너가고 있다

어둠을 지우고 가는 건지 사방은 점점 희붐해진다

이것은 불면을 위한 것이 아니고 아침을 위해

나를 앞세운 허공의 순서가 아니냐

저 한 말씀 위해 새벽 3시가 나를 깨운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