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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라진 먼집 ㅡ 이만섭

이양덕 2013. 7. 17. 07:56

 

 

 

 

 

 

 

 

사라진 먼집

 

 

 

     이만섭

 

 

 

언제부터인가 기억 밖으로 먼집이 사라졌다

세월의 등 뒤에서 뚝심 있게 나를 지켜보더니

생의 여울목에서 그만 놓쳐버렸다

그런데도 아무렇지도 않게 지내는 삶의 두레질이

조금은 실망스럽고 부끄럽다

아! 그때였던가, 내 마음 허전하기 시작할 무렵

기억에서 빠져나가는 중이었을까. 아무런 기척도 없이

그래서 나는 자꾸만 뒤를 돌아보았던 것은 아닐까,

허물어진 흙담 위에 핀 박꽃을 보려는 것처럼

저녁 비낀 햇살은 공중에 고추잠자리 풀어

이끼 낀 장독대를 맴돌게 하고

오랫동안 비어 있어 연기조차 잊어버린 굴뚝의

처마 끝에 거울로 된 집을 올린 무당거미는

저녁이면 달맞이 드는 각시나방을 위해

허공에 투명한 방 하나 꾸며놓았는데,

집이 사라지니 모든 게 속절없이 떠나갔구나

무엇이 내게서 기억을 송두리째 앗아갔을까,

봄날이면 살구꽃 만발해놓고, 귀엣말로

아직도 이처럼 한 시절 고이 간직하고 있다고

삶의 추임새처럼 속삭여주던 먼집이여,

돌아가지 못해도 마음에 머무는 것만으로도

가슴 따뜻한 흔적이여,

기억에서 머물 때 잘해주지 못해 미안하고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