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만섭시인서재}

동대문에서 ㅡ 이만섭

이양덕 2013. 10. 8. 09:41

 

 

 

 

 

 

 

동대문에서

  

           이만섭

 

 

  

해 뜨면 해 지고

해 지면 해 뜨고

이 시대에도 변함없는 십자가여,

 

길 묻는 이 없어도

이정표처럼 우두커니 서 있으면

알았다는 듯이 문턱을 밟고 지나가는 과객이여,

 

성문 밖에서 누가 또 온다

신발을 툭툭 털면서 천연덕스럽게 도착한

성문 앞, 보아하니 화상이다

감춰진 전대들,

새벽 4시의 불빛 헤치며 온다

 

아니지 지금은 오후 4시지,

거리가 파시 같아 시간을 잘못 본 거지

우리가 약국을 지나 곱창집 골목을 기웃거릴 때

저들은 보따리를 등에 멘 거야,

 

뒤따라 어정쩡하게 걷는 안남 여자

저 여자 치렁치렁한 치맛단이 슬리퍼를 가렸지만

발톱에도 레일아트를 했을 거야,

 

해 뜨면 해 질 때까지

해 지면 해 뜰 때까지

왕조의 옷차림으로 이정표를 자처하는데

환속한 사람처럼 꾸물대는 물정이여,

 

오늘 저녁도 주점은 만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