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만섭시인서재}

호수 ㅡ 이만섭

이양덕 2014. 1. 6. 08:01

 

                                                                   그림 ㅡ 이만섭

 

 

 

 

 

 

 

호수

 

 

                이만섭

 

 

 

 

  내 열망의 악장 첫 페이지에 기록된 고유명사 한가운데 코발트빛 눈동자가 들어 있다

 

  온순한 소처럼 되새김질하는 산과 비밀을 삼킨 화사처럼 꼬릴 이끌고 풀숲으로 사라진 강물 사이 순간을 천 년처럼 웅크려 기다리는 얼굴이 있다 

 

  어느 바람 부는 날 일렁일렁 뒤척거려 눈꺼풀 같은 물결 속으로 감쪽같이 사라진 에메랄드를 찾아 수초를 헤집고 들어간, 깊이 들어갈수록 푸르러지는 동공은 물결처럼 커져서 마침내 호수를 집어삼키고 말았다

 

  불변의 이름 지켜내기 위해 종일토록 물가를 맴돌며 입구에 흰 염소를 매어놓고 물새들만 출입을 허락함으로써 새들의 유적지가 된 물섬이 있다

 

  저녁이 오면 염소의 고삐는 주인이 거두어 가리라 호수도 수면에 새의 깃털을 덮고 포근히 잠들어야 하니까, 그런 밤은 물버들 가지에 날아온 울새가 별빛에게 휘파람 소리를 들려주곤 하는데 동병상련을 앓으며 잠 못 이루는 물낯이 아롱아롱해질 때까지 휘영청 떠 있는 달빛자락을 이내처럼 깔아놓고

 

  늦잠 든 아침을 깨워 드맑은 물에 단장을 하고 거울을 들여다보는 눈동자에게 다가 가 누이야, 하고 나지막이 부르고 싶은 호수가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