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만섭시인서재}
아름다운 수면(水面) - 이만섭
이양덕
2014. 6. 21. 06:53
아름다운 수면(水面)
이만섭
그 물낯을 처음 본 곳은 저수지 수문 아래였다
염소와 내가 티격태격 힘을 겨루며
그곳 말뚝을 매어놓은 데까지 이끌려 가서
서로 가쁜 숨을 몰아쉬고 있는데
저수지가 불쑥 물거울 하나 꺼내주는 거였다
그 속에 우리의 모습을 고스란히 담고 있었는데
물가의 수초들이 모가지를 올려
일제히 들여다보던 거울 가운데 하나였을 것이다
맑게 단장한 풀잎들도 햇살에 비친 투명한 이슬을 거울삼는데
저마다 새로운 마음가짐으로 치르는 의식 같았다
우리도 소란스런 동작을 내려놓고
우두커니 서서 얼굴이 비친 거울을 들여다보다가
염소와 내가 한바탕 밀고 당기던 감정을 생각해보니
그만 부끄러움이 일기 시작했는데
물낯은 그런 모습을 잔잔히 덮어두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