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만섭시인서재}

서해를 지나와서 ㅡ 이만섭

이양덕 2014. 8. 24. 10:38

 

 

 

 

 

 

 

서해를 지나와서

 

 

  이만섭

 

 

 

 

바다를 보지 않고 바다를 보았다고 말했다

 

뻥 뚫린 고속도로를 지나와서 리아스식 해안을 이야기했다

 

저녁노을이 장미꽃보다 붉으면 붉었지 못할 리 없다고 자랑했다

 

바닷물을 끓어 올리는 노을빛의 역광이 눈부신데

 

갯벌은 썰물이 지어놓은 옷가지를 널어놓았을 뿐인데 그 위에서

 

망둥이가 뛰놀고 있다고 떠벌렸다

 

섬들은 배처럼 몸을 밀고 다니며 대합도 캐고

 

바지락을 좁는 것은 저만치에서 지켜본 듯이,

 

아아, 그랬었구나, 들떠있었구나,

 

채석강의 켜켜이 쌓아놓은 고문서 아래서

 

수만 년 동안 파도가 읽어낸 문장들을 등지고 서서

 

저녁노을에 빠져 있을 때, 누군가 건네는 석화 한 첨 해금 머금은

 

짭조름한 그 맛을 우려내고 있었구나,

 

염전의 일꾼들 돌아가고 상엿집 같은 소금창고 앞에서 우묵하게

 

자란 바다억새를 나는 말하지 않는구나,

 

어스름이 거미줄처럼 천지간에 그물을 칠 때까지

 

노을빛이 흐느끼고 있었다는 슬픔이 서사를 말하지 못하는구나, 나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