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족사진 - 이만섭
가족사진
이만섭
모년모월모일모시, 식구들은
핏줄의 결의를 다지듯 아버지를 중심으로
나란히 한때의 삶을 기록했다.
문밖에는 살구꽃이 흐드러져 낙낙한 시절을 북돋우고
그런 날이 떠나가자 모두 삶의 현장으로 뿔뿔이 흩어졌다.
장자는 가족들이 떠난 자리에 남아 구들을 지켜야 했으며
오랜 세월 강 건너에 켜지는 희미한 불빛을 바라보며 저녁을 맞이했다.
가끔 밤늦게까지 꺼지지 않고 불빛 깜박거릴 때
오롯했던 지난날이 슬며시 다가왔다
명절이나 제사 때 바쁘다는 핑계로 챙겨주지 못한
상속자의 의무감이 불쑥 고갤 내밀면
흩어진 가족들이 눈앞에서 한동안 아른거렸다.
아들은 아버지에게 딸은 어머니에게 같은 말로 물었다.
그때 식구들은 무슨 제목으로 회합을 했을까요,
궁금증은 자꾸만 얼굴을 내밀며 손거울을 보듯 다가와
뒤집어보면 텅 빈 공터만 동그마니 남아
거울은 그걸 말해주지 않았다.
아버지는 표범처럼 고독했으며 그 표정이 너무 무거워
말뚝을 박아놓은 것처럼 보였는데
어머니는 귀먹은 소리로 채근했다 바짝 좀 붙어서봐요, 야-
가운데 있는 사람이 어디로 붙어서란 말여,
어른들도 간혹 습관과 버릇이 충돌했다.
아들아, 네 아부지는 싸게 들에 나가 일해야 되는 양반이다
얼른 웃고 끝내자, 내외하듯 두 손을 앞섶에 모은
어머니도 모쪼록 표정이 상기되었다
그래 딸아, 네 어미는 시집와서 입때껏 저렇게
같은 말을 곰국처럼 우려먹는단다. 피차 주고받는 말들은
폴라로이드 형식으로 인화되어 나오고,
서랍 속에서 빛바랜 세월을 꺼내놓은 가족들은
얼굴에 낀 먼지를 거울 보듯 닦아내고 있었다
*이미지: 장욱진 화백