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만섭시인서재}
오리의 겨울 ㅡ 이만섭
이양덕
2014. 10. 31. 15:41
오리의 겨울
이만섭
한 계절이 다른 계절을 외투처럼 껴안으며
온기를 나눠주고 싶을 때
물떼를 맞춰 날아오는 오리 떼들,
약속이나 한 듯이 줄을 지어
풍덩풍덩 꿱꿱-
고요한 얼음호수에 입수하려다가
나동그라지는 궁둥이에서 뭉텅이째 빠져나온 흰 깃털은
계절을 더 깊은 곳으로 부르고
맵찬 바람에 야호, 하고 소리칠 때마다
하얗게 뿜어내는 입김은 오리의 체온이었다
사냥꾼의 교묘한 망보기 같은 강은
마른 갈대를 입고 오늘도
어김없이 한 무리 오리 떼를 몰고 와서
투명한 표면에 나동그라져 엉덩방아를 찧는
오리의 궁둥이를 적나라하게 보여준다
깃털을 고스란히 빼준 채
온 누리에 알몸으로 바쳐지는 생의 한낮
다시 태어난 오리들이 뒤뚱거리며 몰려가는 거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