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몽유의 筆跡 - 이만섭
이양덕
2015. 5. 7. 15:20
몽유의 筆跡
이만섭
노란 표제의 수첩 한 권
달밤은 첫 장을 열어
밤하늘의 흑기러기 떼 몰고 간다
마당을 쓸 듯 긋는 필체가 어둠에 접힐 때
청무 잎 갉아먹는 사슴벌레 소리
달팽이 관을 타고 온다
때맞춰 화분에 물 주듯 풀잎에 짓는 이슬
정적의 기스락에 묶인 마을
풀어헤치는 개 짖는 소리 밟아
달맞이꽃 익어가는 골목을 돌아가면
박우물 가에 물목 하는 여인들
도란도란 우물물 퍼내는 은밀한 소리에
두레박 타고 건너오는 별빛들
오랜 신비를 품은 야행성으로
밤의 페이지를 밝히기 위해
불면을 켠 채 달빛을 쓰는 밤이 푸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