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만섭시인서재}
아름다운 손 - 이만섭
이양덕
2016. 1. 6. 07:58
아름다운 손
이만섭
담쟁이에도 손이 있었네
잎 떨군 담쟁이덩굴에서 야윈 손을 보네
핏줄 불끈 돋은 손가락들
마른 살갗처럼 담벼락은 거칠어져 있고
손은 저렇게 벽에 딱 붙인 채
오르는 일만이 생의 전부였기에
여름은 그토록 푸르렀고
잎사귀 뒤에 감춰진 고통의 비문들
누가 알기나 했겠는가,
어혈이 든 채 검붉은 화석처럼 굳어 있다
담장 너머 그 어떤 확신이 있어
줄기차게 꿈꾸던 자리
마침내 헐떡이는 숨결 봉인해 놓고
거미손으로 견디는 저 굴기의 정신은
이 겨울 지나 봄이 오고
새순 돋아 잎 푸르러 질 때까지
어느 누구에게도 내주지 않으리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