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양덕의♡詩밭}

사금파리의 기억 - 이양덕

이양덕 2016. 4. 25. 09:26










   사금파리의 기억


       이양덕




     햇살이 고무신코를 핥아주는 봄날

     사금파리에 손을 베면 풀잎을 칭칭 감고

     꿈꾸면서 파란 수평선을 날았다

     과거의 틀안에 갇혀 울 때면

     코끼리가 날 태우고 아라비아로 데려갔다

     유리관 속에 박제된 부엉이도

     부리로 압정을 쪼아대며 돌파구를 찾고

     나뭇가지도 살얼음을 견디며 잎을 돋았다

     그러나 사금파리에 벤 기억은 잊혀지지 않았다

     잘린 도마뱀의 꼬리가 다시 줄을 잇듯

     희미한 기억이 하나하나 떠오르면

     악몽에서 깨어나듯 비명을 지르고

     어머니의 젖꼭지를 빼앗아간 동생들이

     나를 이끌고 청보리밭 언덕배기를 넘었다

     난 손목을 자르고 도망쳤지만

     무릎에선 피가 주르륵 흘러내리고

     어느새 아버지는 울고 계셨다

     蘭을 한 잎 한 잎 닦는데 두 촉이 피었다

     아직 눈은 붉게 충혈되어 있고

     흙 속의 사금파리도 깨진 그대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