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만섭시인서재}

거울의 취미 - 이만섭

이양덕 2016. 6. 8. 07:03








거울의 취미


  이만섭




1.

십 년째 초상화만을 그리는 그가

아무도 없을 때 사물을 그린다는 사실을 알았다,

사물뿐만이 아니라 보이는 것마다

붓끝을 휘둘려 모사하는 것을 보았다,

어느 생면부지 아름다움을 물어왔을 때

거침없이 옷매무시를 고쳐주는 자상함도 그의 매력이었다,

그래서 그는 예술가일까, 하고 생각한 적이 있다,


2.

세수를 끝낸 얼굴이

호기심 어린 눈으로 거울을 대면한다,

나는 거울을 보는데 거울은

나의 얼굴을 내세워 자신의 얼굴을 본다,

거울 속 그의 눈빛이 자주 깜박거린다,

왜일까,

아마도 그는 눈을 깜박이는 불치의 병을 앓고 있는 것은 아닐까,

그렇지 않으면 그것은 연애의 방식일지도 모른다,


3.

이 문제는 발설하지 않기로 한다,

빈곤한 연애는 약점을 키워 절교를 부르는 일이어서

누구라도 떠나면 깨끗이 잊어야 하고

그것이 자연스러운 것이며

자연스러운 것이 아름다운 일이어서

서로 맑은 마음으로 대면하다가 몌별하는 게 이상적이어서

처음도 나중도 뒤끝 없는 자취를 원하는 것이다,


4.

언제부터인가 그는 벽을 문으로 사용한다.

그의 마술에 걸려드는 사람이

남자보다도 여자가 많다는 사실을 나는 알았다,

왜일까, 궁금하게 여기던 중

그의 종족들은 번식력이 탁월해서

작고 섬세하게 간추려져

손바닥 안에서 감췄다가 기억의 손님처럼

새로운 분장사가 되어 찾아오는 보았기 때문이다.


5.

어느 소녀가 공주가 된 사연도

그의 취미를 얻은 이유에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