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만섭시인서재}
푸른 저녁을 위한 변주 - 이만섭
이양덕
2016. 6. 19. 10:55
푸른 저녁을 위한 변주
이만섭
문은 벽으로 돌아섰고
소리도 어둠 뒤에 숨어들어
달빛 아래 저녁의 지붕들이 고스란하다
누에잠 같은 고요가
독작하는 달빛을 몽롱하게 부추기며
푸른 저녁으로 안내하는 밤
보이지 않는 것 가운데
드러내지 못하는 것이 있다면
갇힌 애벌레처럼 꿈틀거리는 일은
이녁의 불운일 것인데
그런 비밀을 귀엣말하듯
어둠 저편에서 깨고 나는 것이 있다
노란 달빛 커튼 열어젖히며
꽃등 켜 건너오는 산목련 흰 꽃
일찍이 목련을 놓치고
그런 봄날을 헤매며 터벅터벅 걷다가
절름절름 도착한 발걸음을
위로해주기 위해
흰 꽃 받쳐 들고 나오는 환한 자태는,
호젓한 숲에 별빛들 뒤따르고
사무쳐서 태어나는 광경이 설마 이런 것일까,
꽃을 마중하는 숨결이 가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