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만섭시인서재}
오류의 시 - 이만섭
이양덕
2016. 7. 19. 12:43
오류의 시
이만섭
벗이여, 이제부터 나는 연필을 쓰기로 했네.
수성펜 함부로 휘갈겨 쓴 것이 후회되어
그것들이 나의 오류를 지적할 때 나는 막막했었네.
종이를 구겨 쓰레기통에 던지며 나는 생각했네.
종이가 무슨 죄가 있는가, 하고
문서들은 잘못을 반복하지 않기 위해
띄어쓰기와 맞춤법이 반듯한 활자를 주문해왔네.
그런 나는 책상머리에서 사인하고
내가 나를 결제하는 오류를 눈감아 주었네.
이 모든 것이 나의 시를 가둬놓는 게 아니었겠나,
젊은 날에 연서를 쓰던 파카만년필을 서랍에 가두고
책상 구석에 말뚝으로 꽂힌 연필을 뽑아 들었네.
문장의 죄를 사해주듯 지우개는
머리맡에서 나의 오류들을 거두어 주네.
벗이여, 지난날 완벽해지기 위해
우리는 잘못을 짓고도 인정하는 것을 부끄러워했었지,
흑심에 침 묻혀 쓰던 유년의 공책을 감추려 하듯이
하지만 거울에 비친 글씨가 거꾸로 읽히듯
오류가 힘이 되는 나를 선택해야겠네.
나의 시가 그것을 증명하고 싶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