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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의 입 (외 1편) - 마경덕

이양덕 2016. 7. 21. 06:47








물의 입 (외 1편)

 

   마경덕

 

 

 

돌멩이를 던지는 순간

둥근 입 하나 떠올랐다

파문으로 드러난 물의 입

잔잔한 호수에 무엇이든 통째로 삼키는 거대한 식도食道가 있다

 

물밑에 숨은 물의 위장

찰나에 수면이 닫히고

가라앉은 것들은 쉽게 떠오르지 않았다

물가에서 몸부림치던 울음을 지우고 태연한 호수

 

계곡이며 개울을 핥으며 달리다가

폭포에서 찢어진 입술을 흔적 없이 봉합하고

물은 이곳에서 표정을 완성했다

물속에 감춰진 투명한 찰과상들, 알고 보면 물은 근육질이다

 

무조건 주변을 끌어안는

물의 체질

그 이중성으로 부들과 갈대가 번식하고 몇 사람은 사라졌다

 

물의 얼굴이 햇살에 반짝인다

가끔 허우적거림으로 깊이를 일러주지만

사람들은 여전히 잔잔한 물의 표정을 믿고 있다

 

 

 

책들의 귀

 

 

 

책의 귀는 삼각형,

귀퉁이가 접히는 순간 책의 귀가 태어나네

주차 표시 같은 도그지어*

졸음이 책 속으로 뛰어들면 귀가 축 처지는 책

킁킁거리며 손가락을 따라가던 책은 그만 행간에 주저앉네

순순히 귀를 내주고

충견처럼 그 페이지를 지켰지만 해가 가도록

끊어진 독서는 이어지지 않고 책의 심장에 먼지만 끼었네

 

귀 접힌 자리마다 쫑 메리 해피 도꾸 누렁이……

쥐약에 거품을 물고 쓰러진 눈빛이 생각나 눈에 든 문장에 밑줄을 긋네

쫑긋, 귀를 추켜들지 못하고 아무에게나 꼬리를 흔들고 가랑이에 바르르 눈치를 밀어 넣던 비굴한 이름들

흘러내린 두 귀를 실로 묶다가 본드를 발라본 적 있네

 

셰퍼드처럼 진돗개처럼 자존심을 세우지 못한

아비도 모르는 개들은

마루 밑 신발짝이나 물어뜯다가 복날에 하나 둘 사라졌네

 

순한 책의 귀,

녀석도 잡견이네 침을 묻혀도 짖지 않고 책장을 찢어도 물지 않네 누군가의 손짓을 따라가 집을 잃은 책들은

귀를 펴고 또 다른 주인을 섬기거나, 귀를 접고 헤어진 주인을 그리워하거나

 

 

  ———

  *도그지어(dog's ear) : 책장을 접어놓은 부분이 강아지 귀 같다고 해서 붙여진 이름.

 

 

 

                       —시집『사물의 입』(2016)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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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경덕/ 전남 여수 출생. 2003년 세계일보 신춘문예 당선. 시집『신발論』『글러브 중독자』『사물의 입』.