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만섭시인서재}

혼자 마시는 맥주와 -이만섭

이양덕 2016. 8. 18. 06:28









혼자 마시는 맥주와


  이만섭




여름 저녁에 우리는 대화가 필요했다.

더위가 지나가는 하루 동안 가장 말하고 싶던 시간에

식탁을 차지하고, 곁에 화병이 놓여 있지만

우리를 방해하지 않으므로 묵인하면서

창문 쪽으로 정면을 내고

골고루 깃든 어둠을 환영하던 우리는

진담보다 노가리를 노가리보다는 노릇노릇 구워진 노가리를

선호하면서 서서히 본론으로 들어갔다.

고백하듯 그가 속말을 해왔다.

술자리에서 예의는 침 튀기는 말보다

솔직히 토란잎 같은 너른 귀가 필요한 것을,

그것이 손쉽게 감정을 나누는 길이어서

그의 말은 들을수록 귀청이 맑아지고

한 마디 한 마디가 가슴을 시원하게 씻으며 온다.

그런 나는 노가리를 씹으며 진지했다.

어느 비 오는 날 카페에서 생맥주 마신 이야기를 꺼내 들었다.

사내 둘이 술병을 비우는데 그가 합석하고 들었다는 것이다.

셋이서 둘의 이야기를 듣는 불편함으로

그것을 희석시키기라도 하듯 술을 마시는 동안

사내들은 자꾸만 그의 허리를 껴안으려 애쓰는데

꼿꼿한 허리가 끝내 휘어지지 않자

술자리를 파하고 2차로 떠난 이야기였다.

그 대목에서 우리는 킥킥거리며 웃었다.

입맞춤까지 끝난 상황에 이런 연애의 감정을

사내들은 방식을 달리하다니

그가 속을 다 비울 때까지 보여준 경청만으로도 충분한데 

아마도 세상에서 가장 가벼운 말은

제 몸을 구속하는 말일 거라며

우리는 너털웃음을 지으며 마지막 원샷을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