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만섭시인서재}

견디지 못해 ㅡ 이만섭

이양덕 2016. 9. 5. 06:29








견디지 못해



               이만섭




폭우에 축대 무너져

토사 흘러내린 자리에 놀란흙이

비에 젖어 반짝인다.

흙들은 감춰놓은 속을 드러내려

절벽을 뛰어내렸나,


견디지 못해 고백하는 것들,

견디지 못해 뛰쳐나가는 것들,

견디지 못해 자폭하는 것들,


꽃나무는 꽃봉오리를 견디지 못해 꽃을 피우고

꽃은 아름다움을 견디지 못해 낙화하는가,


산다는 것은 생이라는 꿈에서 깨어

고통을 겪는 거라지만, 그런 밤을 견디지 못해

가물거리는 불빛이 있다.


내 막막함은 해와 달을 지나

후일(後日)에 이르렀어도 여전히

불망(不忘)이란 이름을 좇아 먼 길을 가고 있으니


세월의 풀숲 우거졌어도 풀꽃들에 길 밝히며

반성 없이 길을 가는 나는

견디지 못하는 아득함 때문인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