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만섭시인서재}
커튼이 보여줄 수 있는 것은 - 이만섭
이양덕
2017. 7. 7. 17:15
커튼이 보여줄 수 있는 것은
이만섭
어떤 비밀은 공공연해서 비밀이 아닌 비밀로
관심 밖에 무심코 드러나 있다. 구멍난 자루처럼
그래도 내력인 듯 쓸모 있을까 싶어
누구에게도 들키지 않도록
눈을 가리고 귀를 닫아놓는 동안
무덤 속 같은 일들은 세상 밖에서 활개를 치고
그런 빤한 창에 커튼을 단다.
조금 전까지 열린 창문이 옷을 입고 있을 때
온전한 속살 하나 감추어둔다면
언제 그랬냐는 듯 비밀은 온전한 결정체로
창문이 허락할 때까지 읽을 수도 찾을 수도 없는
묵비와 난청의 영역인 것을,
안과 밖을 구분 짓는 빤한 창 하나에
이제 커튼은 단속된 입으로 비밀을 지켜내는 비밀의 장막
바야흐로 나비 허리 같은 끈을 풀어 빛과 어둠을 나눈 것이다.
그동안 공공연해서 기댈 곳 없었던 비밀은
자체발광 하던 불빛조차 가려놓고
커튼으로 말미암아 완성되니
이목구비에 의탁해온 생각들은 얼마나 겸연쩍은가,
이만섭 / 1954년 전북 고창 출생. 2010년 〈경향신문〉신춘문예 당선으로 등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