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만섭시인서재}

붉은 뺨 ㅡ 이만섭

이양덕 2017. 10. 17. 07:14








붉은 뺨



               이만섭





가을빛이 저녁 무렵을 건너다가

담장을 기어오르는 담쟁이 넝쿨에 붉은 뺨 하나 내주고 간다.

(담쟁이는 그것도 모르고

붉은 뺨을 찾아 헤매는 중일지도 모르지만)


흘러가는 구름도 할 일 없어

높새나 좇는 듯싶어도

사실은 붉은 뺨을 장만하러 간다.


나무의 활엽들과, 활엽에 이르지 못한 지상의 발자국들이

모두 그립고 애틋한 자리인 양


(살구꽃 진 자리 같은,

봄날인데도 서러운 그런 자리의)

붉은 뺨이 눈동자에 맑갛게 괴어오는 저녁


강가로 가서 강가를 거닐면서

(이제는 조약돌을 더는 줍지 않으리라,

흔들리는 물결과도 더는 갈등을 빚지 않으리라)


물거울에 비친 얼굴을 들여다보며

굴원처럼 굴지 않으리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