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만섭시인서재}

오래된 세월 - 이만섭

이양덕 2017. 12. 8. 11:23








오래된 세월



   이만섭





저마다 떠들어대도 우리는

돌이 입 다문 시간을 살아가고 있다. 운명처럼

십 년 전에도 오늘도 변함없이 굴러가는 세월에 대해

한마디 변명이라도 해주길 바라고 있지만

대답없는 날들에도 꽃은 피고 지고

그런 날들이 돌의 사주에 의한 거라고 투덜거리면서도

굳어버린 돌의 혀에 귀를 기울이는

속절없는 우리에게 생의 비극은 되풀이되고

바람은 천만년동안 돌의 문을 두드렸으나 굳게 밀봉된 입은

여전히 이끼를 피어 올리며 불멸을 꿈꾸고 있다.

이제 새가 노래하던 단란했던 숲은 나무들 헐벗어

푸른 내력을 자랑하던 나뭇잎이 자꾸만 눈에 밟히는데

사방 어디에도 자취 잃은 마른 계절의 숨소리만

바스락바스락 귓전을 맴도는 세월은

봄 나무가 꽃 피우고 가을 나무가 열매 맺는 발자취의 이력으로

계절의 자화상을 그려놓고 있다.

그런데도 누군가 우리의 뒤통수를 훔쳐보며

욕망의 그늘이 그곳에 붙어있기라도 하듯

빈번히 치욕을 견디면서

쫓기는 우리는 우리를 잊어버리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