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만섭시인서재}

희극의 탄생 - 이만섭

이양덕 2018. 1. 24. 15:29








희극의 탄생



                이만섭




그들은 사거리 공터에 무대를 차렸다.

사방으로 환히 트인 길을 가로막아 선 횡단보도의

푸른 신호등을 따라 교차하는 사람들

평지를 걷는대도 십자가를 진 듯 고갤 떨구며

발걸음마다 고행의 흔적이 역력한 채 세상의 그늘에 에워싸여

습관을 벗지 못하는 옷과 그것으로 말미암은

무기력한 모습을 해방하는 길이라면

기쁨이라는 희망을 얻어내는 일이었다.

저녁 무렵의 거리에 인파가 몰리며

어느덧 그들의 계획에 갇히기 시작했다.

이때다 싶어 풍경을 조감하듯 사거리를 향해 그들은

세팅해놓은 무대를 올렸다.

세상은 들여다보면 들여다볼수록

기쁨보다 슬픔 쪽에 기울어져 있어

눈부신 일광은 물론 밤하늘의 별빛조차 받아들이지 못한 채

맑은 영혼을 외면하는 습관으로부터

슬픔이 사육되는 그늘을 지워내기로 했다.

이제부터 아침이라는 셋과 저녁의 넷이라는 감언이설로 자충수를 둔

남방원숭이의 주인처럼 행세하지 않으리라,

그것은 사람과 사람을 비좁은 간격에 세우는 일이어서

몸을 옭아 납덩이처럼 굳어놓기에

기쁨이란 넉넉한 간격에서만 깃드는 거라고

감정이 익숙해지길 기다리는 동안 무대를 비추는 저녁 해가

지상에 선물하는 마지막 미소처럼

기다랗고 우아하게 늘어뜨린 거두어가며

천지사방을 다독다독 가라앉히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