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만섭시인서재}
온전한 잠 ㅡ 이만섭
이양덕
2018. 4. 29. 09:34
온전한 잠
이만섭
밤과 어둠 사이 저수지가 있다.
집들이 잠긴 인적 끊긴 마을에도
은비를 뿌리듯 총총 건너오는 별빛듯,
모든 길이 지워진 세상의 안쪽에
달빛은 몽유의 산책자처럼
돌배나무 그림자를 담벼락에 기대어놓았다.
쥐 죽은 듯 이어지는 암전의 시간
검은 고양이 발자극 따라 꽃들이 노랗게 피어
무슨 궁리이기에 표정은 저리도 다소곳할까,
저수지의 물빛은 아득하도록 잠잠한데
목선을 노 젓는 사공의 체위로
고스란하게 어둠을 건너가는 생의 한 자취
기쁨이나 슬픔 따위는 세상 밖 일인 듯
가면을 벗어던진 낯으로
천 길 바닥에 놓인 몸뚱어리가 간곡하다.